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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책과 우연들 - 김초엽 : 책, SF, 김초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애정할 수밖에 없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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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을, SF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책이 아닐까? 작가가 서평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한동안 나에게 서평 또는 리뷰 읽기란 떠나고 싶지 않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세계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거기서 천천히 멀어져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계속 이 안에 머물 수는 없더라도 언제든 이 기억을 돌려볼 수 있게 정제하는 독후 활동이라고 할까.

나 역시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작가 인터뷰, 서평, 리뷰를 찾아보며 그 감상을 오래오래 곱씹곤 하는데, <책과 우연들>은 300 페이지 짜리 작가노트 혹은 선물세트 같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 작가의 따끈따끈한 작품을 매번 따라 읽을 수 있는 것은 독자로서 정말 즐거운 일인데, 그 작품들과 관련된 작가의 생각까지 에세이로 읽을 수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SF에 관한 이야기가 책에 가득한 것도 좋았다. 스스로의 독서취향을 파악할 무렵 내가 이상하게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한 소설이나 SF 소설에 끌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같이 책을 펼치는 순간 책 속 세상이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지금도 가끔씩 꺼내보는 단편이고, <숨>이 너무 좋아 이 책을 읽는 유료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을까>라는 소설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적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초엽의 <우.빛.속>은 아마 내가 이런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첫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쿵' 하는 짜릿한 감동을 받았다. <책과 우연들>을 읽으면서 책장에 꽂혀있던 <우.빛.속>을 꺼내 몇 개의 단편을 다시 읽었다. 작가가 말한 좋은 글의 정의가 이 책에 쓴 것처럼 '마음을 움직이고, 충격을 주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하는 글'이라면 이미 넘치게 그런 글을 써주고 있다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유용한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마음을 움직이고, 충격을 주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하는 글을. 

책장을 덮고 나니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와 밀리의서재에 담긴 책이 수두룩하다. '김초엽의 우연한 책들'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며 따라 읽고 싶은 마음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를 '최애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신작이 나올 때마다 논픽션 픽션을 가리지 않고 허덕이며 읽는 나를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작가의 엄청난 팬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 읽고 싶다. (책덕후 마음 설레게 하는 이런 에세이도, <사이보그가 되다>와 같은 똑부러진 인문서도 또 내주시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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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 형식조차 분명하지 않은, 추상적인 무언가였을 것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혹은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 출렁이게 하고 확 쏟아버리게 하는 것. 뒤늦게 다시 주워 담아보지만, 더는 이전과 같지 않은 것.
어쩌면 좀 과다하게 부풀려진 인간존재의 중요성을 조심스레 축소해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지각과 감각의 한계를 잠깐이라도 넘어보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 SF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랜 천동설을 뒤집는다.